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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에스안과는 좋은 의지를 가지고 좋은 결과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안과입니다.

안과 양말

작성자 : 김무연 원장 작성일 : 2014.11.19

 

홈페이지가 바뀌면서 은근히 할 일이 많아졌습니다. 새 페이지가 작동되기 전에 미리 챙겨야 하는 일이었지만 결국은 일단 돌려보면서 시행 착오 속에서 해결해야 하는 게 더 많은 것 같습니다. 그래도 컴퓨터로 하는 일은 잘못되면 고치고 다시 하고 그런 게 가능하니까 비교적 수월한데 사람 몸에 하는 일은 그럴 수가 없으니 수술하는 것에 비해서는 이런 일이 훨씬 덜 긴장됩니다.
 

요즘은 각종 IT 기기를 일찍부터 잘 다뤄야 얼리어댑터라고 인정도 받고 사람도 따르고 그러는 건데 제가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같은 SNS 매체를 솔직히 잘 모릅니다. 그래서 다른 안과에서 다 하는 기본적인 홍보 마케팅도 잘 안 돌아가고 그런 걸로 경쟁 병원 원장한테 우습게 보이기도 하는데 뭐 어느 정도 인정해야 하는 측면도 있습니다.
 

뭔가 아주 조심스럽게 상의를 했는데 남들 다 아는 걸 너는 몰랐어?” 이런 답을 들으면 당황되면서 좀 우울하고 언짢지 않습니까? 나름대로 참을성 많고 끈기 있는 좋은 성격이라고 생각해왔는데 그건 순전히 저 혼자 생각일 뿐 남들이 뭐라 하던 신경 안 쓰는 <쫄지 않는> 케릭터가 아니라 세평에 신경을 많이 쓰는 <유리멘탈>이라 뭔 일이 터지거나 스트레스 많아지는 상황이 되면 제 마음이 여유롭지가 못합니다. 그럴 때 제 눈에 띈 사람들 괜히 일 많아지고 야근하게 되고 속으로 저 엄청 미울 겁니다. 그런 내용을 다 알지만 대표원장 체면에 미안하다고 하긴 좀 그렇고 그냥 그 친구 퇴근할 때까지 저도 사무실에 같이 앉아서 이렇게 글 쓰고 있는 겁니다. (아차! 제가 안 가고 있으니 더 퇴근을 못하고 있을수도 ..)

 

그런데 사람이 각자 잘 하는 게 있고 못하는 게 있으니까 저는 제 장점을 살려서 살아가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가 비쥬얼이 별로니까 방송 출연하고 그런 건 못하더라도 제 생각을 글로 옮겨 적는 건 비교적 스트레스 없이 할 수 있는 편이니까 저랑 코드가 맞는 아날로그적인 사람들이랑 잘 지내면 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합니다. 물론 제가 좋아하는 일만 하고 제가 좋아하는 사람만 만나고도 편히 살 수 있는 그런 처지는 못됩니다. 속상하고 짜증 내면서도 맡은 책임 다하고 꼬인 일 하나하나 풀어가야 하는 게 제 처지지요.
 

그런 제가 하루 중 제일 즐거운 시간은 솔직히 수술방에 있을 때 입니다. 학생 때도 어떤 친구는피 보는 거 싫어하고 어떤 친구는 다리 아파서라도 수술방 들어가는 거 싫어하고 그랬는데 그럴 때면 제가 늘 바꿔주었습니다.

비교적 손도 안 떨고 아는 건 없어도 타고나 관찰력으로 흉내는 잘 내었기 때문에 저는 타고난 배포에 비해 수술은 편하게 하는 편입니다. 정말 다행이지요? 밖에서 무슨 일이 있었건 전날 누구랑 속상한 일로 무슨 꼴을 당했건 간에 그래도 수술방에 들어가면 맘 편해집니다. 모자 쓰고 마스크 끼고 소독하고 손에 묻은 물기를 수건으로 닦으면서 바깥 세상의 번뇌는 다 잊고 제가 가장 기분 좋은 상태로 변신이 됩니다. 그래서 정말 수술이 하루 종일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수술도 금방 안 끝나고 한번 시작하면 두어 시간씩 계속 현미경 보면서 하는 그런 거면 좋겠습니다. 그렇지만 실제로는 수술이 오래 걸리면 그건 안 좋은 일입니다. 뭔가 루틴대로 안되고 예정 시간을 넘고 그래서는 안되지요.
 

아무튼 저는 수술방이 좋습니다. 옛날 생각 한가지 나네요. 언제던가.. 레지던트 3년차때 같은데.. 강남성모병원에서 전공의 축구시합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인턴 레지던트들 일하느라 힘들고 잠 못 자서 힘들지만 일년에 하루 정도는 잔디밭에서 축구도 하며 햇빛 좀 보라는 뜻으로 수련 교육부에서 퇴근 시간 무렵에 소집을 한 겁니다. 내과계와 외과계로 팀을 나눠서 하기로 했는데 중간에서 안과는 어디로 끼어야 하나 안과 레지던트끼리도 의견이 나뉘고 고민이 되었습니다. 저희가 분명히 수술실을 이용하는 외과계 인 것은 맞지만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서젼과는 전혀 분위기가 다르다 보니 전공의 축구 시합에서 외과계 팀에 끼면 야 니네가 왜 이리로 오냐?” 소리를 듣게 되니까요. 실제로 정형외과나 신경외과처럼 수염도 못 깎고 씻지도 못하고 땀 뻘뻘 흘리며 일하는 안과 레지던트는 별로 없습니다. (본인이 원래 지저분한 경우는 뭐 예외로^^) 소소하게 서로 스트레스 주고 자잘한 일 많고 (물론 그런 게 다 트레이닝입니다. 저희는 기본적으로 작은 걸 다루기 때문에 사람이 좀 잘아야 합니다)

남들이 보기엔 말도 안 되는 거 하느라 잠 못 자고 그러지만 그래도 육체적으로는 다른 외과계 레지던트 보다 확실히 좀 편했습니다. 오죽하면 수술실 내부에 수술복 갈아입는 갱의실에서 안과 레지던트 양말은 인기리에 없어졌겠습니까? 몇 일째 못 갈아 신어 냄새가 풀풀 나는 다른 외과계 레지던트 양말에 비해 훨씬 깔끔하기 때문에 옷이랑 같이 걸려있는 가운에 이름표를 보고 안과 레지던트가 신고 들어온 양말을 막 바꿔 신고 나가는 것이지요.
 

지금은 소위 말하는 험한 과들도 그런 환경에서 근무하지는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웃기는 이야기지만 실화고요 저도 한번 당한 일이 있습니다. 제 양말이 있던 자리에 남겨진 이질적인 양말이 딱 느낌이 정형외과 양말 같았는데.. 차마 바꿔 신지 못하고 그냥 맨발로 구두 신고 나왔습니다.
 

어제 저녁에 9시 넘어서 구로동에서 개업하고 있는 정형외과 친구를 오랜만에 만나 늦은 저녁을 함께 먹었습니다. 아침 9시에 시작해서 매일 밤 8시 반까지 진료를 하고 사이사이 수술도 하고 그러는 친구입니다. 돈도 많이 벌겠지만 .. 그냥 레지던트 때부터의 습관이라 일을 안하고 가만히 집에 앉아 TV 보는 게 너무 싫고 힘들다고 합니다. 환자 많으면 즐겁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하면서 저녁 시간 보내는 편이 더 마음 편하다고 합니다. 저는 그 정도로 워크홀릭은 아닌 것 같고요 그러나 그 친구한테 우습다는 소리 들어도 수술홀릭이기는 합니다.